1 면형(麵形)은 천주님의 전능(全能)으로 이루어지고 무아(無我)는 천주님의 협조와 우리의 노력(努力)으로 이루어진다.
2 사람의 주관의 대상은
동물성(動物性) - 의(衣), 식(食), 주(住)
지성(知性) - 진리(眞理)
신심(信心) - 선(善), 덕(德), 애(愛).
3 면형무아(麵形無我)의 범위는 성교회(聖敎會) 모든 교리와 진리의 중심이 된다.
4 세속(世俗)이란, 하느님 모르는 사회와 열심 없는 수도자의 사회이다.
5 천주님께서는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칠 때 자비를 베푸시고 용서하심으로 전능(全能)을 발하시고 벌하실 때는 무능(無能)해 지신다.
6 천지만물(天地萬物)과 인간과의 관계는 인간이 만물(萬物)을 의식주로 삼아 사용함으로 일치하게 되고 천주님도 우리와 일치하신다. 그러나 천주님을 거역하는 자에겐 만물도 거역한다.
7 덕과 복은 사랑에 있고, 사랑은 천주님이다.
8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양심과 자유이며 자유는 천주님도 침범 못하시는 완전 자주권(自主權)인 선택하는 권리이며 이 두 가지가 경계선이다.
9 침묵(沈黙)은 자기를 누름이니 이 침묵만이 듣고 감각하며 생각하고 알게 한다.
10 영원한 기도는 성의(誠意)와 노력(努力)이다.
11 복(福)[참된 복]이란 외적조건에 관계없이 누리는 마음의 평화이며 양심을 지킴에서만 얻어진다.
12 양심의 자유를 보여주는 실천방법은 완덕오계(完德五誡)이다.
13 법 중 법은 영원불변(永遠不變)의 양심법(良心法)이다.
14 천주님을 보는 방법은 양심을 항상 바르게 갖는 것이다. 양심은 영혼(靈魂)의 눈이다.
15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은 양심을 거슬려 불안(不安)을 품은 자로 자아(自我)가 마음에 가득한 교만한 자이다.
16 세상 비극의 원인은 양심을 거스르고 자유를 잘못 씀에 있다.
17 참회는 양심과 자유 있는 증거로 천주님과 화해하는 순간이며 이것은 보속 중 보속이다.
18 양심은 선(善)을 취급하는 지성(知性)의 협조자이다.
19 자연계에서 하느님을 못 보는 이유는 양심이 흐리고 물욕(物慾)에 빠졌기 때문이다.
20 덕은 양심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다.
21 자연의 빛은 눈을 밝히고 양심의 빛은 제한(制限)없는 빛으로 천주님을 보는 빛이다.
22 양심은 영혼의 눈이며 선(善)만을 한다.
23 수도원은 완덕(完德)을 전공하는 곳이다.
24 수도자는 제 2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가 되기 위해 성인공부하는 사람으로 세상의 고(苦)와 화(禍)를 기쁨으로 봐주는 사람들이다.
25 성인(聖人)이란 타고난 능력(양심, 자유)을 하느님 위해 완전히 쏟는 자이다.
26 수도생활의 기초는 뉘우침과 개선의 노력이며 이를 통해 완덕에 속히 진보하는 생활이다.
27 수도자의 구실[사명]은 하느님의 존재와 십자가의 비결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이다.
28 수도자는 내적 사제(內的 司祭)이다. 성모님도 참다운 사제였다.
29 수도원의 수련(修鍊)은 선을 훈련하는 곳이다.
30 양심의 규모는 첫째 양심의 가책(천주님의 소리)이며 둘째가 타인의 비난에 대한 생각 때문에 고치는 것이다.
31 천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상속(相續)은 영생영복(永生永福)이지만 지상 것은 덤으로 주신 것이다.
32 세상 쾌락과 영신복(靈神福)과의 차이는, 세복(世福)은 염증과 유한(有限)함이고 영복(永福)은 영원함과 평화로운 기쁨이다.
33 사욕(邪慾)의 뿌리는 매우 깊으므로 매순간마다 뽑아야 한다.
34 매일 천주님 위해 해야 할 일은 그분의 뜻인 맡겨진 일을 충실히 함과 싫더라도 해야 할 의무를 참으며 하여서 큰 희생을 바침과 이것을 통해 그분과 일치함이다.
35 영혼의 병을 고치는 방법은 진실한 참회(懺悔)다.
36 순교정신(殉敎精神)이란 하느님 사랑으로 모든 괴로움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37 예수를 보여주는 방법은 무시, 모욕, 천대, 고통을 웃음으로 받음이다.
38 진실한 희생기도는 인(人), 사(事), 물(物), 현상(現象)에서 오는 불평, 불만을 참는 것이다.
39 인간의 천성(天性)은 더 좋은 것을 원한다.
40 양심은 우리 천성으로서 우리를 보호하는 천주님의 손이다.
41 자유를 잃은 상태는 지옥과 같은 것이다.
42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제일 가난하여 천주님 모시기 위하여 텅 비어 놓은 마음을 가진 사람과 겸손과 인내로 십자가를 진 사람들이다.
43 우리 수도회 가족이 완덕으로 나아갈 길은 점성, 침묵, 대월, 면형무아의 길이며 그 방법은 완덕오계(完德五誡)이다.
44 죄(罪)는 고통과 비극을 낳는다.
45 성화(聖化)의 가장 첩경의 방법은 양심과 자유를 잘 쓰는 것이다.
46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 으뜸 되는 목적은 성화(聖化)이다.
47 점성정신의 실천방법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비천하고, 작고, 평범한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실하게, 빈틈없이, 정확하고 알뜰하게 하는 것이며 이것을 무시하는 수도자는 낙오자이다.
48 면형(麵形)가는 길은 침묵(沈黙)과 대월(對越)이다.
49 침묵은 주께서 바다의 물보고 잠잠하라 하시듯이 사욕이 일어날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억제하는 것이다.
50 주(主)를 닮은 걸작품이 되려면 사욕을 눌러야 한다.
51 교만(驕慢)은 질투(嫉妬)의 어머니다.
52 대월(對越)은 천주님 싫어하시는 모든 잡념과 분심을 뛰어넘고 사욕을 억제하여 빛이신 천주님과 대면하는 것으로서 관상, 묵상의 과정이다.
53 천주님의 참사랑은 어려운 일, 고통, 십자가를 통해 오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을 전화위복(轉禍爲福)시킨다.
54 침묵(영혼, 정신침묵)은 사람을 천주인간(天主人間)으로 만드는 첩경이다.
55 완덕의 절정은 예수님 계시는 면형(麵形)으로 감이다.
56 면형은 예수께서 천주시면서 비하(卑下)하시고 비하하시어 무화(無化) 하신 것[성체]을 말한다.
57 진복은 겸손하고 비천한 곳에 즉, 점성정신을 생활화하는 데 있다.
58 십자가란 죽는 형틀이 아니고 침묵하는 영혼의 생활을 말한다.
59 희생이란 자신의 십자가(十字架)를 잘 짐을 뜻한다.
60 십자가를 짐은 모세가 파라오 왕 앞에 던진 지팡이가 뱀이 되었는데 바로 그 뱀을 집는 것과 같은 것이다.
61 일단 집고 난 모세의 지팡이는 한 민족의 힘이 되고 바다가 길이 되게 하였고 하늘에서 양식이 내렸고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는 기구(器具)가 되었다.
62 모든 것을 희생으로 참아 받으면 전화위복의 원칙에 따라 우리를 해치는 일이 없어진다.
63 우리가 해야 할 제일 큰 일은 겸손극치(謙遜極致)의 길 점성정신으로 가는 것이다.
64 분심(分心)은 천주님과 나누어진 마음으로 천주님과 일치할 수 없는 마음이다.
65 완덕에 깊이 들어가는 길은 점성정신으로 가는 것이다.
66 아톰(Atom)이라고 하는 것은 신학적으로는 물체를 분해하면 물체에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것은 분자(分子)요, 보이지 않는 것은 원소(元素)이다. 아톰은 원소로서 사실로 있는 것이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모든 물체는 아톰에서 시작되었고, 아톰으로 형성되었다. 우리 육신도 하나의 물체이므로 아톰으로 돌아간다. 아톰은 분해할 수 없는 것이다. 물 = H2O 아톰이다.
67 우리의 영혼, 육체는 어디로 가는가? 영혼은 영혼의 근본이신 천주님께로 가고, 육체는 물체의 근원인 아톰으로 간다. 아톰이 합쳐서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68 부활이란 영혼과 순 아톰이 합친 것이다.
69 순 아톰적 육신을 가진 사람은 순수함으로 병(病)도 있을 수 없다. 점성정신을 통해서만이 아톰 육체가 되는 것이다. 겸손의 극치 생활을 해야 한다.
70 영혼에는 지성과 의지가 있다. 지성에는 양심이 있고 의지에는 자유가 있는데, 지성의 상대는 진리이고 의지의 대상은 자유를 통해서 만선(萬善)이나 만락만복(萬樂萬福)이 그 대상이다.
71 자유란 선택하는 권리인즉 참된 자유를 모르면 의식주밖에 모르게 되고 자율적인 많은 복을 누릴 수 없게 되므로 세상에서도 불행하게 산다.
72 인간은 오계성(五界性)으로 나누는데 ① 광물성 ② 식물성 ③ 동물성 ④ 영성(靈性) ⑤ 신성(神性)(성신모심)이다.
73 예수님 마음은 만선(萬善), 만복(萬福), 만락(萬樂)이 충만한 마음이다. 이 예수의 영혼과 마음을 닮아야 한다.
74 누룩 없는 빵에 있어서 누룩의 상징은 빵을 부풀게 하는 것으로서 사욕으로 인간을 부풀게 하는 것이며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떠날 때에 누룩 없는 빵을 먹고 소지(所持)하게 야훼께서 명하신 것이다.
75 만나는 누룩 없는 빵의 상징으로서 만미(萬味)를 갖춘 음식이며, 우리 영혼양식의 상징이다.
76 번제(燔祭)는 죄를 없이하는 뜻으로 짐승을 잡아 바치는 것이다. 짐승은 인간의 동물성도 상징한다.
77 번제(燔祭)란 불에 사루어 바치는 것으로 불꽃처럼 끓고 타는 사랑을 바친다는 뜻이다.
78 영원한 기도란 사욕(邪慾)없는 상태이며 사욕 없는 마음을 바치는 것이다.
79 빵제사는 사욕 없는 마음을 계속 바치는 것이 미사성제를 계속 드리는 것과 같다.
80 점성정신은 수도정신(修道精神)의 뿌리다. 점성정신에서 침묵생활이 이루어진다.
81 우리 사욕을 누른다는 것은 우리 힘으로 어려운 것이요, 우리의 노력에 천주의 힘이 가해져야 한다.
82 천주님이 우리 인간에게 원하는 것은 죄짓지 않음과 사욕 억제하는 것이며 인간에게 자주권(自主權)을 주셨으므로 이 자주권을 잘 쓰기를 원하는 것이다.
83 관상(觀想)생활은 천주님을 알아보는 생활이다.
84 점성정신(點性精神)은 아톰으로 가는 길이다. 점은 길이, 넓이, 높이 없는 정신적 존재다.
85 사제(司祭)는 예수와 일치된 사람으로 희생을 끊임없이 바치는 것이 사제이다.
86 주를 만나는 곳은 우리 육신은 아톰으로 가고, 영혼은 면형무아로 가는 곳이다.
87 ‘나는 빛이로다’ 하신 말씀, 빛을 받으려면 어두움을 물리쳐야 한다. 우리들의 빛을 받기 위하여 성의노력만 하면 그 노력을 보시고 빛을 주신다.
88 덕(德)은 익힌 선(善)이다.
89 덕은 미소한 일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곧 사람을 위하여 할 때 덕이 이루어진다.
90 죄는 자주권을 잘못 씀으로 죄를 짓는다. 자주권을 잘 씀으로 해서 천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다.
91 면형으로 가는 단계는 첫째, 법을 잘 지킬 것, 모든 법은 천주로부터 나온 것, 즉 상선벌악(賞善罰惡)의 원칙이다.
92 면형으로 가는 둘째 단계, 복음훈시(福音訓示)로서 점성정신이다. 부모, 처자, 형제를 끊어버리고 자기 자신까지 끊어버려 무화(無化)하는 것이다.
93 면형으로 가는 셋째 단계, 주님과 사람에게 봉사하여 외적으로 인간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94 면형으로 가는 넷째 단계, 면형에 가까울수록 육체도 달라진다. 타볼산에서 세 사람은 보았다. 세상에서 천국을 누린다.
95 영혼은 그 근본인 천주님께로 가는 동시에 육체도 따라 아톰이 되어 자기 근본으로 간다.
96 죽음이란 하나의 변화이며 영혼은 천주님께로, 육신은 아톰으로 변화하는 것이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97 자기를 누르라는 것은 악마에게 끌려 다니는 그 유혹에서 빠져나와 자유롭게 되어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이다.
98 사랑의 결과는 하나로 만들며[삼위일체(三位一體)] 평화하다. 천주님께로 모여 일치를 이룬다.
99 부활한 육신은 아톰으로 변하며 아톰으로 돌아간 육체는 물체의 근본인 원자로 돌아가 사기지은(四奇之恩)을 받은 육신이 된다.
100 모든 물체는 두 가지로 형성되었는데 실체[영혼과 같이 보이지 않는 것]와 부속성[맛, 모양, 냄새, 색(色)]이다.
101 복(福)은 선(善)이 좋아서 자주 행함에서 온다.
102 세상과 인간이 무너지는 원인은 양심의 질서(秩序)가 무너짐에서 온다.
103 예수를 모시는 방법은 면형(麵形)을 통해서 모시는 것이다.
104 성모 마리아처럼 예수를 낳기 위해서는 생각, 말, 행동을 선하게 하며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을 우러러볼 때 낳는 것이다.
105 사랑이 천주님이란 뜻은 양심을 지키면 복이 오고 복은 선이 좋아서 가꾸어지면서 복이 되며, 복은 선을 부른다. 덕(德)이 덕으로 올라가면 사랑이 된다. 사랑은 천주님이시다.
106 성인(聖人)이 되는 길은 예수와 같이 무(無)로 돌아가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예수는 죄인을 회개시키고 겸손하고 비천한 생활을 했으며, 성모님과 같이 모든 고통을 착하게 참으시고 깨끗하게 살으셨다.
107 사랑의 실천 단계는 선을 익히면 덕이 되고 덕을 익히면 사랑이 된다. 사랑은 만선만복(萬善萬福)의 근원이 된다.
108 자유는 선택하는 힘으로써 선을 택함으로 덕을 쌓게 되고 덕을 익힘으로 사랑을 하게 되므로 영생영복(永生永福)을 얻는다.
109 재미있게 살다가 재미있게 죽는 비결(秘訣)은 조그마한 희생, 어려운 것을 주님과 사람을 위하여 참는 데 재미를 붙이는 방법이다. 사람이 의, 식, 주를 좋아하듯이 희생을 좋아하는 길이다.
110 순명(順命)의 근본정신은 예수께서 ‘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셨으니 순명의 근본정신은 사랑이다.
111 자주권이란 나를 바르고 착하게 가르치는 권리이다.
112 악마는 인간에게서 착한 마음을 빼앗아 유인하는 것이 가장 큰 업이다.
113 자유(自由)의 안전 보장은 양심이다.
114 비극의 근원은 자유를 잃음이다.
115 덕(德)이란 단련된 선이며, 덕은 천국을 얻을 공로가 되며, 세상복(世上福)도 얻게 되는 것이다.
116 천주님이 인간에게 세상만물의 주인이 되게 하신 이유는 영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17 자기 영혼을 거스리는 생활이란 속임수로써 세상을 살면서 세상을 원망하고 슬퍼하는 생활이다.
118 영혼이 천주님 모상대로 빛을 낼 때 천지만물이 모두 자신의 소유가 된다.
119 영혼의 눈이 밝아지면 마지막에는 면형(麵形) 속에 계신 천주님을 알게 되어 천주님과 일치하게 된다.
120 면형으로 간 영혼과 부활한 육신만이 일치한다(예수님의 부활).
121 점성정신(點性精神)으로 사는 사람의 외모는 말과 용모와 행동이 사랑의 표현이다.
122 성총(聖寵)과 사욕은 인간 안에서 항상 투쟁 관계를 가진다.
123 수도자(修道者)는 실제적인 사제(司祭)가 되어야 하며, 성모님은 참 사제로서 대사제 그리스도를 낳으신 어머니시기에 모든 사제 중 사제이시다.
124 괴로움의 원인은 죄(罪)와 사욕(邪慾)이다.
125 예수님은 우리가 찾아서 비천하고 가난하고 병고에 시달리는 데로 찾아다니셨다.
126 주님과 함께 사는 가장 훌륭한 고속도로는 완덕오계(完德五誡)의 실천이다.
127 우리가 침묵할 때는 양심이 밝아지므로 예수님을 보게 된다. 침묵[신적침묵(神的沈黙)]은 수도생활의 근본(根本)이다.
128 사랑과 미움의 결과는 사랑은 일치의 결실이며, 일치는 평화를, 평화에서는 건설을, 건설에서는 행복을 얻는다. 미움의 결실은 분열이며, 분열은 투쟁을, 투쟁에서는 파괴를, 파괴에서는 멸망을 초래한다.
129 예수님과 일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병자, 귀머거리, 가난한 사람, 소경들에게 어려움을 감수(甘受)인내하면서 봉사해야 한다.
130 미사 예물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죄 없는 마음, 사욕 없는 마음이 하늘과 땅 중에서 제일가는 예물이다.
131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생활은 죄 안 짓겠다고 결심하고 용서를 청하면서 노력하는 생활이며, 양심 지키며 사는 생활이다.
132 순교와 동일한 가치의 삶은 인, 사, 물, 현상에서 당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기쁨으로 참아 받으면서 일생을 사는 것이다.
133 빛은 정신적인 빛을 알아들을 줄 알고 생각할 줄 아는 천주님으로부터의 빛과 태양의 빛이 있는데, 생각하는 빛은 태양 빛과는 비할 수가 없다.
134 사람이 영육(靈肉)에 실패하는 근본 원인은 단 한가지로서 미소한 일에 충실하지 못함이다.
135 인간(人間)이 무슨 까닭으로 다시 나야 하느냐 하면, 동물적인 본성(本性)에서 해방되기 위함이다.
136 대자연이 질서를 무너뜨릴 때 대 괴변이 생겨서 세상을 파괴한다. 인간의 근본 질서인 양심을 거스리면 자신은 어떻게 되겠는가?
137 서로 돕고 협조하는 것은 인간계(人間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연계와 만물도 서로 돕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들끼리의 협조는 필연적인 것이며, 협조하는 것은 주님의 근본적인 뜻이다.
138 천주님의 마지막 신비(神秘)는 면형(麵形)이다.
139 십자가(十字架)는 구원의 유일한 도구(道具)이다.
140 제한(制限)없는 생활은 침묵(沈黙)에서 관상(대월)으로 가는 생활이며 영원한 주님과의 생활이므로 아무것도 제한하지 못한다.
141 더욱 잘 사는 길은 의무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외[덤]의 일도 적극적으로 할 때 더욱 큰 복이 따른다.
142 천주께서 수도자들에게 특별히 계시해 주신 완덕의 비결은 점성정신(點性精神)이다. 즉 미소한 일에 충실히 하면서 겸손의 극치로 생활하는 것이다. 점성정신과 침묵생활은 세상에서 수도자들을 복되고 즐겁게 살게 하신 방법이다. 이 길을 통하여 당신에게 오게 하신 길이다.
143 성모 마리아는 천주인간의 신화(神化)된 인간의 모델이다.
144 인간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동물성에는 의식주가 필요하며, 지성에는 진리가, 마지막 기능인 의지엔 사랑이 그 대상이므로 절대로 필요하다.
145 면형무아(麵形無我)는 모든 덕의 절정이다. 주님은 면형, 즉 무(無)에 계신다. 무아는 예수님으로 나를 채우기 위해 나를 전부 비워 놓은 것이다.
146 나를 비우기 위해서는 사욕(邪慾)을 억제하고 희생(犧牲), 극기(克己)가 절대로 필요하다.
147 모든 일의 목적 달성 방법은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전력(全力)을 기울이지 않으면 성공은 없는 것이다.
148 형제애(兄弟愛)는 크리스챤의 휘장이다.
149 덕문(德門)에는 복이요, 죄안(罪案)에는 화(禍)이며 상선벌악(賞善罰惡)은 윤리요, 양심불이다.
150 사욕은 타락한 마음의 소산(所産)이며 악마 유혹에 빠져 빼앗긴 마음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그는 진리와 정의에 도전하고 허위(虛僞), 패륜(悖倫), 도륙(屠戮)을 일삼는다.
151 세상에서 잘 사는 비결은 ① 죄를 없애야 할 것 ② 사욕이 없어야 하며 ③ 천주님의 뜻에 맞는 일을 해야 하며 ④ 천주님 좋아하시는 것만 해야 함이다.
152 Atom은 원소로서 제일 원소(Prima materia)이다. 사기지은(四奇之恩)은 무상손(無傷損), 광명(光明), 신속(迅速), 투철(透徹)이니 파격적 특전(特典)이다. 아톰 만으로만 이루어진 육체는 죽었다가 부활한 육체로서 사기지은을 입는다.
153 완덕의 절정 면형무아에 도달하기 위하여
① 모든 법, 사명을 지나가서
② 복음훈시(福音訓示)를 따라감이요
③ 복음 훈시를 초월하여 천만사(千萬事)에 어떻게 하면 천주님과 사람에게 봉사할까 고심함이요
④ 제일 면형, 중간 면형, 끝 면형을 지나서 누구든지 면형화(麵形化)하는 공로 따라 그 육체는 아톰으로 더욱더 고상하게 변화된다.
⑤ 아무 복잡성 없이 순(純)아톰으로 이루어진 육체는 순결하고 아름다워 영원히 삶을 누린다. 죽음이라는 변화만 한번 지나갈 뿐이요, 다음에는 Atom화[마치 神化]한 육체로서[神 자체임] 영혼과 합하여 영생하는 신인(神人)이 된다. 죽음이란 것이 죄악에 빠진 인간에게는 최후극화(最後極禍) 허무이지만 면형무아의 성화된 사람에게는 신인(神人)으로 전화(轉化)하는 극락(極樂)의 순간이다.
154 천신(天神)과 인간(人間)에게는 위격(位格)이 부여되었으니 위격은 자주권을 가진 이성적인 실체로서 무엇이든지 뜻있게 하는 자격이다. 즉 목적이 있는 존재이다.
155 자주권(自主權)은 자유를 누리며 자유는 선택하는 권리로서 더 잘 살게 하는 기능이다. 자유는 불가침(不可侵)으로서 아무것도 자유를 구속하지 못하며 날마다 발전할 수 있다.
156 자유를 보호하는 법은 양심이다. 복된 삶의 보장은 양심이며 양심불을 밝혀서 잘 지키는 이는 파격적인 특은을 타고난 사람과 같다.
157 선도(善導)하는 양심은 자유의 안전을 보장하여 상선벌악의 기준을 넘는다.
158 양심은 선(善)만 찾고 진실에 거(居)한다.
159 양심은 지성이 판단한 선악(善惡) 중간에서 상선벌악(賞善罰惡)을 외치는데 그것이 양심의 가책이다.
160 참된 자유는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이 꺼리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니 본성이 요구하는 대로 맘대로 하는 것은 병든 자유로서 그 자유의 불가침성(不可侵性)은 약화되어 뉘우침이 없으면 멸망되어 화가 그지없고 세상은 고해(苦海)가 되며 모든 비극이 유래(由來)한다.
161 천성(天性)은 천명(天命)이며 천성을 지닌 사람은 천명을 따른다. 죽음과 상선벌악은 천명이다. 이 천명이 인간의 사명이며 천성이다. 이 천명이 우리의 성화이다.
162 진실한 참회는 만병통치하는 비방(秘方)이다.
163 천지대왕(天地大王)이 즐기시는 제(祭)는 침묵의 번제로서 양심불이 빛나고 무아로 만미(萬味)를 지닌[만나] 면형제이다.
164 입교(入敎)한 이들은 복되다. 그들은 하늘가는 길을 알고 날마다 천국으로 향상(向上)하니 의식주에 부족함도 상관이 없더라. 모든 수도자들은 더욱 복되다. 그들은 진, 선, 미, 애(眞, 善, 美, 愛)에 맛들이고 지성으로 안전복생(安全福生)을 보장하는 양심의 외침(상선벌악) 윤리의 원칙을 따라 살면서 하늘의 보호를 받고 의지로써 선(善), 미(美), 애(愛)에 끓고 타면서 신격(神格)에 까지 참여할 수 있는 자주권과 선과 덕과 사랑만 알고 행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으니, 아! 그들은 하늘서 온 사람인지 지상천사(地上天使)인지 알 수 없어라.
165 수도 근본정신은 완덕의 절정이니 완덕의 절정은 면형무아이며 당신 자신을 무화[텅 비우시고]하시어 아래로 아래로 내려만 가시더니 그분은 무(無)가 좋으시어 아주 무화(無化)하시고 무(無)로 가시어 무효병(無酵餠)과 일치극치(一致極致)하시어 면형무아가 되셨다. 주 예수와 일치한 이도 이 길을 가니 얼마나 복(福)될고!
166 나와 제일 친한 분이 누구시뇨? 나를 빈틈없이 잘 아시는 분이요, 이 세상에 나를 제일가는 걸작(傑作)으로 내신 분이니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분으로 영혼, 육신 모든 기능과 오관을 내신 분이다.
167 순교정신(殉敎精神)이란 천주님의 영광이라면 아무리 괴로워도 좋고, 죽으면 보다 더 좋아하는 사상이다.
168 전화위복(轉禍爲福) 경계에 이른 이에게는 바위가 단샘이요, 재앙은 꿀이요, 바다가 행길이요, 맹수해조(猛獸害鳥)는 머슴이요, 기갈(飢渴)은 막강이요, 십자가는 생명수(生命樹)다.
169 네 전후좌우(前後左右)에 천만이 쓰러져도 네게는 미치지 아니하리라 하셨듯이 천주님을 공경하는 이에게는 모두가 좋게만 돌아가도록 협조하신다.
170 의인(義人)을 악한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빼내시리라. 주님은 이 정신(精神)을 가르치시고 몸소 실천하시고 사도 안드레아 바오로와 순교자 이냐시오와 우리 복자 라우렌시오 안드레아와 무수한 순교자들이 이러하였다.
171 사랑은 수고를 모른다. 큰사랑이면 모든 괴로움을 넘어간다. 치열한 애덕은 죽음도 모른다.
172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음으로 구해 주셨다. 우리 살리기 위해 희생하셨다. 마귀한테 받은 독소(毒素), 모든 죄의 원소(元素), 이를 없애기 위해 억제하고 십자가 지고 따르자. 날마다 시간 시간 면형제사(麵形祭祀)를 바치자. 계속하는 제사 끝없이 올라온다고 성경에 있다. 면형제사는 계속 올라간다.
173 죄를 없애려면 죄를 낳는 어미인 사욕(邪慾) 없애자. 사욕은 마귀가 집어넣어 준다.
174 영원한 법은 상선벌악(賞善罰惡)을 외친다.
175 덕(德)은 복(福)을 부르고 죄(罪)는 화를 끼치고 화(禍)는 죽음을 재촉하고 죽음은 무덤으로 간다.
176 죄의 유래는 완전(完全)의 흠이요, 사랑을 거스림이요, 양심 불청(不聽)이요, 자유 남용이요, 사욕 방종이다. 범죄(犯罪)는 앙화와 무서운 비참한 절망의 죽음을 초래하니 요란한 이 세상에 모든 비극은 여기서 시작한다.
177 예수 영광 중에 부활하는 비결 ① 죄를 없애야 하고 ② 죄를 짓게 하는 죄의 어미 사욕을 없애야 한다. 사욕을 없애는 날이 우리 부활이다. 사욕 없애는 날이 빛이 나는 날이요, 세상에서부터 영광을 누리게 된다.
178 희생정신 얻는 비결이란 무엇인가? 거름은 오곡백과를 키우고 풍미를 준다. 오곡백과는 닦이고 시달려 음식이 되고, 소화된 음식은 동화(同化)하여 우리 몸이 된다. 이 얼마나 좋은가! 우리 몸엔 이것이 제일이요, 한낱 식물로서 동물계를 넘어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영광이랴! 주와 하나가 될 사람과 하나가 되다니 실로 감개무량한 신비로다. 신비가 기뻐 용약한다더니 우리는 이를 느끼고 누릴 것이다.
179 희생하는 비결이란 것은 몸에는 의식주요 지성에는 진리요 마음에는 사랑이니 사랑은 파란만장(波瀾萬丈)을 지나가고 죽음을 넘어간다. 신(神) 중 신(神)이신 주께서는 희생이니 이는 주께서 제일 좋아하시고 즐겨 흠향하시는 하늘 주님의 수라이다.
180 신망애(信望愛) 삼덕(三德)은 초성덕(超性德)인데 그 중에서는 애덕이 제일이다. 우리 힘으로 얻을 수 없고 하늘에서 주시는 덕이다. 애덕(愛德)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사랑이니 천주께서 주시는 하늘 덕이다. 애덕을 얻는 비결은 겸손과 뉘우침, 성의(誠意), 노력(努力)이다.
181 겸손이 아무것도 아닌 무아에 이를수록 얻을 은혜는 더욱 커지고 얻는 시간이 짧아진다. 양심불이 꺼져 컴컴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판이므로 잘못이 있으면 곧 뉘우칠지니 이것은 자유가 있는 이의 구실이요, 성의 노력은 만사(萬事)에 성공하는 비결이다. 노력이 꾸준하면 열이 날지니 열만 나면 어려운 것을 잊고 부지런해진다. 열에서는 불이 날지니 불이 사랑이다. 믿음이 만능(萬能)이면 하물며 사랑이랴!
182 사랑의 유래(由來)는 어떠하뇨? 사랑은 덕의 보람이요, 덕은 숙달한 선이요, 선은 진리에 숨어 있으므로 바른 양심은 선을 본다. 음식은 몸이 되고 지식은 정신이 되듯이 사랑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바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천주님을 사랑하는 이는 천주님과 하나가 된다. “나를 사랑하는 이는 누구뇨. 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이다”(요한 14,23) 라는 말씀은 마음의 표현이니 말씀으로 그 마음을 알고 말씀대로 하는 것은 바로 그 뜻대로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은 사랑이 가는 그 마음과 하나이다. 사랑이 바로 천주시며 그 사랑은 절대적이다. 절정에 오른 사랑은 절대적은 아니고 고차원을 넘어간 초자연 사랑이다. 사랑을 맛본 자유는 사랑밖에 몰라 사랑만 선택하고 더욱 큰사랑으로 끓고 타는 것이다.
183 행·불행(幸 不幸)을 좌우하는 천성(天性)은 이성과 양심과 의지이다.
184 이성(理性)의 대상은 진(眞)이요, 의지(意志)의 대상은 선(善)이다.
185 이성은 진(眞)에서 선을 알아보니, 만유(萬有)는 대단히 좋은 것이다.
186 의지가 가(假)나 사(邪)나 악(惡)을 가리면 양심은 외치는데 이것이 양심의 가책이요 충고이다.
187 악(惡)의 기인(起因)은 사욕이다.
188 이성(理性)은 추리(推理)로 선악을 갈라놓고 양심에 전하면 양심은 의지에 제공하고 의지(意志)는 자유로 선택하는 것이다.
189 선이 물러나고 악이 들면 양심은 외치는데 양심가책(良心呵責)에도 불구하고 악을 행하면 이는 천성(天性)에 역행이요, 천명(天命)에 패륜무도(悖倫無道)하는 것이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다.
190 악을 물리치고 선을 행했더라면 공로를 세웠을 것을 공로는 상을 받을 권리이니 하늘에서 상찬(賞讚)하는 것이다. 상찬으로 격동된 의지는 선에서 지선(至善)으로 되며, 익숙한 선은 덕이니 덕문에는 복이 드는 것이다. 대덕(大德)은 대복(大福)이요 지덕(至德)은 지복(至福)이요, 지복은 애덕이요 애덕은 만덕(萬德)의 완결이다. 애덕이 덕 중 덕으로서 애덕엔 전화위복이 오고, 애덕이 전화위복이기 때문에 애덕은 만덕의 보금자리이다.
191 진리(眞理)에 숨은 선(善)은 정직한 마음을 찾고 정직한 마음은 선(善)을 만난다.
192 씨앗은 봄철을 기다리고, 선(善)은 직심(直心)을 찾는다.
193 태양이 동녘을 비춘다면 양심(良心)은 영혼(靈魂)을 비춘다.
194 네 몸의 등잔은 눈이니 눈이 밝으면 네 몸은 얼마나 빛나며 네 얼의 등불은 양심이니 양심이 밝으면 네 얼은 얼마나 빛나겠는가?
195 눈의 얼은 창문이요 몸의 등잔이다. 눈이 빛나면 몸에 볕이 드는 것 같이 밝다.
196 영혼의 빛은 양심이요 양심의 빛은 천주님 말씀이요 육신의 빛은 태양이다.
197 불은 물이 되고 물은 불이 되었다. 천주님은 사람이 되시고 사람은 천주님과 하나가 됨을 들어내심이니 불은 사랑이며 사랑은 천주시요 물은 정결(淨潔)이니 물과 눈물로 정화(淨化)한 사람이다.
198 옛적에는 지성소(至聖所)에 성화(聖火)가 있었고 오늘은 성전(聖殿)에 성체불이 있다.
199 물은 제물을 씻는 실로(실로암)의 샘물이요 원본죄(原本罪)를 씻는 성세수이다. 주 목말라 하신 물이 바로 이 물이니 당신의 음식은 아버님의 뜻을 받듦이요 영원히 솟는 샘이라 하셨다. 주께서 원하시는 물이 바로 이 물이다.
200 솔개는 제 둥지가 있고 여우는 제 굴이 있어도,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하시고 찾으시던 안식소(安息所)는 누룩 없는 떡인 무효병(無酵餠)이며 무사무욕무아(無邪無慾無我)이다.
201 신덕(信德)은 불사불멸이니 나를 믿는 이는 영원히 죽지 않으며 비록 죽었을지라도 다시 부활한다고 하였다. 즉 무아(無我)가 되어 영원한 면형으로 가서 천주님과 일치의 극치를 이룬다는 뜻이다.
202 나를 믿는 이는 바로 이 사람이니 내 말을 듣는 사람이다. 믿는 이가 죽지 않는다면 하물며 사랑[애덕(愛德)]하는 사람이랴!
203 주를 사랑하는 이는 주의 말을 듣는 사람이다.
204 예수께서 참으로 나의 창조주(創造主)시요 나의 구세주시라면 어느 뉘라 안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면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 말씀은 의지[마음]의 표현이니 말씀을 듣는 이는 말씀하는 이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임이며 그러면 말하는 이의 마음과 듣는 이의 마음은 똑같이 하나가 되며 두 마음이 한마음이면 참사랑이니 참사랑은 한맘이다.
205 주는 사랑이시니 참사랑은 지극히 좋다. 덕(德)에 복(福)이 든다면 하물며 덕 중 덕인 사랑이랴! 덕에 복이 온다면 애덕(愛德)엔 만복만락(萬福萬樂)이 철철 넘쳐흐른다.
206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은 성서에 실려 있고 특별히 유사시(有事時)에는 몸소 깨우쳐 주시기도하고 범상시(凡常時)에는 우리가 타고난 천성(天性)으로 말씀하신다.
207 천성에는 동물성을 지닌 육체 외에 신성(神性)을 지닌 영혼이 있다.
208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좌우하는 천성은 양심과 자유이며 위격은 자주권을 지닌 이성적 존재이다.
209 누구나 사람은 자주(自主)하는 인권으로 자유를 누린다. 자유는 선택하는 권리니 그 대상은 선, 미, 호, 애(善, 美, 好, 愛)이다. 자유는 만선만복(萬善萬福)을 부르고 양심은 상선벌악(賞善罰惡)을 외친다.
210 입법(立法)의 근본 이유는 양심법에서 기인하며, 누구든지 잘하면 상을 받고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 하늘에서도 그렇고 땅에서도 그러하다.
211 진리에 깃든 선은 양심이 그리워 양심은 선이 그리워 서로 만나면 꽃이 피고 꽃은 열매 맺으며, 꽃이 덕이 되면 열매는 사랑이 된다.
212 착한 마음엔 평화의 볕이 들고 덕문(德門)에는 복이 들며 덕 중 덕인 사랑에는 만복이 와서 만락을 누린다.
213 사랑은 큰 덕의 열매요 덕은 익힌 선의 꽃이며, 선은 진리에 깃들어 있어 허황세(虛荒世)는 그를 알 수 없다.
214 바른 마음은 선을 찾고 선은 바른 마음을 기다린다. 씨앗이 봄철을 기다리면 선(善)은 온순한 마음을 찾는다. 선한 마음을 찾고 기다리다가 만나면 꽃을 피운다.
215 꽃은 덕(德)이요 열매는 사랑이다.
216 만미(萬味)를 갖춘 진수성찬이란 그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만나이다.
217 태양이 생물에 필요하면 양심불은 심신(心身)에 불가결(不可缺)이니 이 몸의 양심에 볕이 들면 싹튼 선엔 꽃이 만발하여 송이송이 열매맺어 덕과 사랑을 거둔다.
218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되었으니 영육을 다 길러 키우는 것이 천명이다.
219 육신에는 의식주와 오곡백과요, 영혼에는 정신과 선미호(善美好)와 천주님의 말씀이다. 정신은 견문지각(見聞知覺)이 지성과 동화한 것이요 지성은 진리의 주관이다. 선미애(善美愛)는 의지의 대상이니 사람은 본시 선이 좋아 자유[의지의 동작]로 선을 가꾸니 선이 자라 싹이 트고 꽃이 피니 꿀과 화로수(花露樹)에 향기 진진한 것이다.
220 선의 꽃은 덕이요 덕에는 복이 오며, 덕 중 덕은 사랑이니 사랑은 천만복락이 철철 넘친다. 의지의 대상(對象) 중 최고 절정은 사랑이니 사랑은 바로 천주님이다. 사랑에 도달한 그는 천주님을 모신다.
221 참으로 내림이 오름이요, 괴로움은 즐거움이다. 기갈은 포식이요, 죽음은 삶이며, 산이 무너져 골짜기를 메우면 교만은 떨어지고 겸손은 올라가니, 성인은 괴로워도 그는 괴로움을 좋아한다.
222 희생의 길이 가치 있는 길이다. 그러나 신덕이 부족하면 힘을 써야 한다. 성의노력은 천만사에 있어서 성공하는 비결이다. 성의노력이 꾸준하면 열이 난다. 열이 열심이다. 열에서는 불이 나니, 불이 사랑이며 사랑은 복(福) 중 복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난 보람있게 사는 길이다. 이 세상에 난 목적을 달성하는 길이다.
223 사천 년 고대한 성부의 외아들 오늘 이 밤중에 베틀레헴에 나셨다. 방 한 칸 없이 한(寒)데서 나셨다. 차디찬 구유에서 아기 우는 첫소리는 자는 세상이 가여워 일깨워 주신다. 우리도 자고 있다. 세상도 모르고 우리를 구하시러 본 땅에 오셨건만 모시지도 못하고 본체만체하고 있다. 가난한 어머니 젖도 없으셨다. 따뜻한 강보도 하나 없으셨다. 억조창생(億兆蒼生)을 기르시는 아기 나시자 희생뿐이며, 나시자마자 십자가를 지셨다.
224 면형 신비는 천지 대왕이 즐기시는 수라이며, 침묵의 번제이다. 대월로 빛이 나며 무아는 만미(萬味)를 지닌 면형제이다[소병제(素餠祭)].
225 어이나 큰 경사인가, 하늘 아기 성탄! 양심불 밝히고 우리가 어서가 맞이해야 한다. 하늘엔 영광 우리 땅엔 평화이며, 천지는 손을 잡고 그늘엔 볕이 들고 사해(四海)는 형제애로 꽃이 피었다. 세상아, 깨어라! 네 빛이 오셨다. 하늘 선물 가지고 너를 찾아오셨다. 빛을 받아 빛내어 잘 살아야 한다.
226 아참, 놀랍다. 주님은 세상에 나실 때 모태에 싸이더니, 오늘은 구유에 깊이 숨겼네, 극(極)을 넘은 광채를 지니신 분이 가실 때엔 십자가의 성제(聖祭)로 비참했고 현재에는 면형 안에 그윽히 숨긴 무가 되셨다. 아하 황홀하구나, 인지를 지닌 이렇듯한 신비를 그 뉘라 모시겠는가? 누룩 없는 면주의 영혼 무사, 무욕, 무아의 영혼이 홀로 모시지 않겠는가?
227 진복(眞福)은 형제애(兄第愛)이며 형제애는 덕 중 덕이다. 덕은 선이 피운 꽃이며 그 본체는 진리이다. 진리의 선은 양심 안에 담는다. 양심은 선만 좋아한다. 만나면 꽃이 피고 꽃은 사랑을 맺는다. 사랑은 천지에 제일이며, 믿음은 현실이요, 희망은 가득 찼다.
228 사랑은 불가침(不可侵)이요, 전화위복이다. 수고도 죽음도 사랑에는 없다.
229 초연(超然)한 광채가 맘을 비추면 금은(金銀)은 티끌이요, 쾌락은 시궁이요, 인지(人智)가 암흑인 줄 깨닫게 된다. 이때 십자가는 생명수로 변하며 바위가 단 샘이 되며, 이에 깃든 기쁨의 잔은 철철 넘쳐흐른다.;
230 사랑은 죽음의 죽음이요 애덕은 악마의 파멸이며, 십자가상(十字架上)의 죽음은 삶이다. 만사에 침묵함은 참 잘 사는 길이며, 허욕, 쾌락, 부정은 죽는 길이다. 허황한 사욕은 병든 의욕이니 여기는 자유도 갈 길도 없는 것이다.
231 세상은 덧없어라, 오늘 네 한숨이 그 유래(由來)인 줄이야! 아, 내 혈연아, 왜 이를 몰랐나! 대월로 밝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질은 막무가내 사면초가로구나, 아, 무상세(無常世)야! 잠깐 기다리라, 자갈이 꿀이라면 극기(克己)도 달고 단 것을 세상은 몰랐어라!
232 뉘우쳐야 한다. 사욕 없애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하느님은 에집트에서 백성을 구할 때 권력으로 구했다. 그리스도는 우리 구하기 위해 희생으로 구했다. 희생은 전화위복으로 돌아간다. 희생을 바라고 원하는 기쁨은 우리가 무효병(無酵餠) 사욕 없는 기쁨으로 마치게 되어 좋아한다.
233 해방된 이들은 실명(失明)이 빛을 보고 만물을 구별하듯이 밤이 가고 낮이 오니, 죽음의 그늘에 시들었던 양심[영혼의 눈]은 황홀경(怳惚境)을 이루고 비로소 천주님을 보고 알고 깨닫고 애착한다. 열매 맺은 선남선녀 무아군(無我群)은 이 모든 사정을 알고도 남을 것이요, 수도자는 점성, 침묵, 대월[관상], 면형무아가 수도자의 뿌리이니 제 뿌리를 깊이, 또 널리 뻗고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 모든 차원을 넘어 주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모시고 다닌다.
234 한 획 한 점 먼지는 보인다. 그러나 점(點), 아톰[원소]인 공기, 산소, 수소…는 안 보인다. 작아도 위대한 결과를 내고, 보이지 않아도 존망의 결과를 낸다. 이와 같이 천주님은 만유(萬有)의 근본이시되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 바다를 건너가야 한다.’아니하시고 네 속에 네 옆에 있는 미소한 일에 충실하면 천국의 복락을 얻어 누릴 것이라고 하셨으니, 누구든지 점성정신으로 살면서 자기 할 일에 성실하면 그 언제나 어디서나 성공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작은 일에 알뜰하여 주의 눈에 든 이는 양심이 맑고 얼굴이 빛나며 말에는 향기 진진한 꽃이 피고 입에는 천만생(千萬生)의 미소가 깃들리라.
235 이때까지 실수가 많았어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주를 따라가면서 주께서 당신을 무화(無化)하셨기에 우리도 스스로 무화에 노력해야 한다.
236 지선(至善), 지성(至聖), 지존(至尊), 전능(全能), 전지(全知), 참사랑이신 주님을 믿지 않는 이가 많다. 반역하고 욕하는 자들도 있고 원수처럼 대하는 사람들도 있고 신자들이라고 해서 다 천주님을 효도로 받드는 것도 아니고 성직자라 하면서도 불효자가 많다. 그래도 끓고 타는 그 사랑은 더욱 큰 쓰라린 고통을 받아 가시면서 희생이 되셨다. 만복만락(萬福萬樂)이 철철 넘쳐흐르는 선, 덕, 애를 가르치셨다. 악, 죄, 사욕을 징계하시고 피하게 하심으로써 행복되게 하셨다.
237 희생정신을 통(通)해 장성(長成)한 인내심은 수난을 기쁘게 지나간다는데[신지(神智)를 통해서 알아낸 비결] 희생할 적마다 더욱 큰 낙(樂)을 누린다면 사랑은 수고를 모른다. 비결은 순교정신이다.
238 하느님을 닮은 모상(模像)은 인격, 자주권, 자유, 양심 이 네 가지이며 하느님이 가지고 계시는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닮은 모습이다.
239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만 낳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성인성녀를 낳으신 분이시며, 내 영혼을 낳으신 분이며 은총의 혈관이 되시는 분이다. 은총은 인체의 피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은총의 피로써 내 영혼을 낳으신 분이 성모님이시다. 영성의 피는 은총이다. 피는 생명이다. 은총의 피가 성모님을 통해 흘렀으므로 성모님에 의하여 낳으신 영혼이 아니면 성인이 될 수가 없다.
240 하느님의 영원성(永遠性)은 우리 인간의 차원으로는 모른다. 동물이 우리 인간의 차원을 모르는 것처럼, 하느님은 모든 차원을 넘어 영원성을 가진 분이다.
241 예수께서는 물과 같이 내려가서 당신을 텅 비워 놓으셨다. 비우고 비워서 무(無)가 되시고 무아(無我)가 되셨고, 즉 면형무아(麵形無我)가 되셨다.
242 어떤 물건이나 다 실체(實體)와 속성(屬性)이 있다. 실체(Essence)는 안 보인다. 속성은 빛, 맛, 냄새 등으로 보이고 감각되는 것이다. 면형무아[성체]는 밀떡에 실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속성인 허체(虛體)만 존재한다. 이것이 기적이며 우리의 모범이 되시기 위한 상징, 즉 누룩 없는 빵은 사욕 없는 마음이라야 면형무아(麵形無我)가 된다는 상징이다.
243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하나 되지 않으면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없다.
244 사랑은 덕(德)에서 나오고 덕(德)은 익힌 선에서 온다.
245 점성(點性)은 시작이요 면형무아(麵形無我)는 마침이다.
246 무(無)는 우리 본(本)이다. 고로 우리 본인 무를 찾아가는 게 무엇이 어려운가? 고향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247 영원한 면형(麵形)은 차원 높은 정말 사제(司祭)다. 면형 되는 이는 무적장군(無敵將軍)이다.
248 남을 선(善)으로 가르치고 하느님 사랑으로 인도하는 사람은 부모보다 더하다. 부모는 동물성으로 하나가 되는 사랑을 한다.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도 대단히 큰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바로 인도하고 가르쳐 주는 이는 부모보다 훌륭하다. 즉 사람을 지성(知性)으로 인도하므로 더 높은 사랑이다. 거기에서 덕으로 올라가게 하면 더욱더 높은 사랑이다.
249 사랑은 사랑하는 자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해주기 위하여 줌으로 하나가 된다. 평생서원을 하는 수도자는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해 드려야 한다.
250 하느님 사람은 다섯성[오성(五性)]으로 광물성, 식물성, 동물성, 영성, 신성으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주로 수도원에서 성총(聖寵)으로 다시 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모님을 통하여 다시난 사람이다.
251 순교자들은 사랑으로 끓고 타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믿음이 만능이면 하느님 사랑으로 들어간다면 전능하신 그분과 하나가 된다.
252 하느님이 당신 사업에 있어서 당신사람을 이 세상에 두셨다. 당신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 것이 당신 성업(聖業)의 목적인데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시겠는가? 당신 뜻대로 해 드리려는 우리에게 전화위복으로 갚아 주신다.
253 죄는 완전의 흠이며, 질서의 문란과 자유의 남용, 자주권의 남용, 사욕의 방종에서 생긴다. 죽음을 남겨 놓으신 이유는 죄를 징계하기 위해 남겨 놓으신 표적이다.
254 하느님의 신성(神性)을 지니신 성모님은 고통을 받을수록 무적 장군처럼 하느님의 강복을 받았다.
255 침묵이란 타락한 자신과 그 의지를 억제함을 말한다. 여기에서 빛이 오고 그 빛으로 대월지경(對越地境)에 들어간다.
256 양심불은 하느님 사랑의 도수대로 밝아진다.
257 규율(規律)이나 규모(規模)를 경멸하는 사람은 제 영혼을 무시하는 자이다. 굴레 벗은 말과 같다.
258 지혜[현명]는 깊은 신심의 어머니이며 수도자는 이 신심으로 즐거운 삶과 죽음을 한다.
259 점성정신(點性精神)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며 이 세상에서도 알뜰하고 경제적으로 사는 길이다. 점성정신보다 더 작은 것이 없고 더 큰 것도 없다. 이 정신은 철학을 초월하는 천상신비 철학이다. 즉 지극히 미소한 데 하찮은 것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정성은 성의노력을 하는 것이다.
260 수도원은 사랑의 집이다. 형제애(兄第愛)가 없는 곳은 수도원이 아니다.
261 누룩은 사욕(邪慾)이다. 누룩 없는 빵은 성체이며 사욕 없는 마음이다. 사욕 없는 빵이신 예수를 닮아 사욕 없는 자가 되자. 누룩은 사탄의 유혹으로 타락한 마음이다.
262 하느님 앞에 우리는 가외 것을 해 드리자. 맡은 바 의무를 다하고도 덤의 것을 하면 주님의 특은을 받을 것이다.
263 양심불은 죽는 날까지 켜지면서 밝아진다. 덕이 밝을수록 이 불은 켜지고 찬란하여 끓고 타면서 세상을 밝힌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빛이다.
264 우리 모친이 피로써 나를 낳으신 것처럼 성모님은 성총을 통해서 신성의 하느님 사랑을 낳으신다.
265 지성의 대상인 진리와 지성이 요구하는 진리만 찾고 정직하고 양심대로 산다면 거기에 선의 요람이 있다. 선은 언제나 진리를 그리워하고 선과 진리가 서로 만나면 덕의 꽃이 핀다. 덕의 꽃이 피면 복이 온다. 즉 익히고 연습하고 세련되고 단련된 선이 덕이다.
266 우리의 복(福)은 물질에 있지 않고 하느님의 진리와 선과 덕, 사랑에 있다.
267 사람은 반드시 다시 새롭게 탄생해야 한다. 자연대로 난대로 사는 것은 동물과 같다.
268 음식이 소화되면 육신을 성장시키고 아름답게 키운다. 진리에서 온 선(善)을 우리 정신화(精神化)시키면 지성을 향상시켜 덕 중 덕으로 가서 사랑이신 하느님께로 일치한다.
269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은 작은 것이라도 정성껏 하는 것을 말한다. 그분의 은총은 그곳에 내려오신다.
270 황금은 사랑의 상징이다. 우리의 가장 마지막 대상은 사랑이다. 의식주와 지식 등이 중요하지만 마지막은 사랑이다. 사랑은 마음을 충만케 한다. 형제애(兄第愛)를 주님께 바쳐야 한다.
271 유향은 기도를 상징한다. 불 켜는 기도, 양심불을 켜는 기도, 즉 이 기도가 영원한 기도다.
272 몰약은 희생정신이다. 옛날에는 고신극기를 했는데 이제는 내게 닥치는 괴로움만 잘 받으면 넉넉하다. 편태나 고복을 입는 것 등은 쓸데없다. 극기는 내 사욕을 정복하는 데 꾸준히 하는 것이다.
273 주께서 시몬에게 “더 깊은 데로 그물을 치라”(루가 5,4)하여 그곳에 그물을 쳤더니 많은 고기를 잡았다. 수도자도 피정 때 더 깊이 그물을 쳐서, 즉 침묵대월(沈黙對越)로 빛을 한없이 받아야 한다.
274 참회, 정개, 보속은 병이 나서 약 쓰는 것과 같다. 대월(對越)은 하느님께 대한 길을 트이게 하는 것인데 그 길이 죄악으로 막혀졌을 때 이것을 고치기 위해 통회, 정개, 보속의 약을 써야 한다.
275 교회(敎會)에서 사제가 강복을 내릴 때 십자가로써 한다. 십자가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인데 왜 하필 십자가로 하는가? 십자가에 복이 있고 그 안에 보물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276 예수의 휘장은 애덕이다. 애덕은 성화(聖化)의 극치며 안식처이다.
277 용모로 기도하는 이는 얼굴에 구름이 끼지 않고 평화롭다.
278 자유의 진정한 의미는 불가침, 불구속, 불침범이다.
279 그리스도의 휘장[깃발]은 형제애요, 그 사랑은 일치, 자유, 평화다.
280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이사악을 받으시고 많은 은혜 주셨다. 우리가 자유 바치면 그냥 계시지 않고 말할 수 없이 기쁘게 많이 갚아 주시는 것이다.
281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죽이려고 할 때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우리 자유(自由)도 당신이 받으시고 우리 마음대로 자유 못쓰게 하신다. 당신이 자유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자유는 선택하는 능력이다. 제 마음대로 선택한다면 제일 좋은 것을 가리어 가질 것이다. 사람의 본성(本性)은 자유를 따라서 선택할 줄 알고 선택하기 때문에 좋은 것 중에도 더 좋은 것을 한다. 하느님께서 선을 하기 위해 양심을 박아 주시고 자유로써 날게 하시고 더 높은 곳으로 자유롭게 나아가게 하셨다.
282 만일 자유가 병든 후에는 사욕 따라하고 싶어 한다. 말세가 되면 세상이 악해지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때는 너무 괴로워 모두 죽으면 좋게 생각하고 도무지 살기를 싫어한다고 했다. 이것은 범죄자의 괴로움을 가리킨 것이다. 병든 자유 고치는 약은 자제(自制)하는 것이며 이 자제를 통해서 만선만덕의 하느님께로 가게 하는 것이 자유의 역할이다.
283 주께서 “네 마음을 내게 다오”하신 것은 즉 자유를 달라고 하신 것이다. 하느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 자유를 빼앗으려고 하겠는가? 아니다. 이 자유를 재창조(再創造)하셔서 거룩하게 하시고 생활케 하시고 강복하셔서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284 수도자들은 자신의 자유를 복음적 권고(勸告)에 따라서 바치는 것이다. 즉 순명허원을 하는 것이고 순명허원을 실행하면 재창조된 자유를 가지고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복(福)되게 사는 것이다.
285 자유 잘못 쓰면 하느님은 실패하시게 된다.
286 다섯 동녀가 등불 준비 못했다고 쫓겨났으니 이 불은 양심불이다.
287 누룩을 먹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제적되었으니 이 누룩은 사욕이다. 아지마[누룩 없는 빵] 누룩은 반죽을 부풀게 하고 사욕은 마음을 들띄운다.
288 우리로서는 불능(不能)이나 하느님의 사랑으로는 모두 넘어간다.
289 익힌 지식은 정신으로 간다. 이래서 인간의 지성은 향상된다.
290 그리스도 십자가상에서 왜 희생되셨나? 우리가 그렇게 희생을 하고 바쳐 드리기 위해서다.
291 면형(麵形)은 겸손의 극치요 여기서 하늘나라가 창조된다.
292 순명지덕은 누구든지 하느님의 뜻대로 하는 일에 복종하는 것이다.
293 제일 좋은 것을 쌓아 둔 창고는 의지(意志)다. 의식주를 쌓아 둔 창고는 동물성 지식을 쌓아둔 창고는 지성(知性)이다.
294 선(善)은 진리(眞理)에서, 선은 익어서 덕(德)으로, 덕은 사랑으로, 사랑은 하느님이다.
295 진리에 사는 선은 언제나 바른 마음을 찾고 선을 그리워한다.
296 말은 의사 표현이다. 뜻[의지]이 그려 내는 것이 말이다.
297 적은 것일수록 보배가 차 있다.
298 우리는 참 형제자매다. 우리 집안 형제자매보다도 수도 정신으로 된 형제자매가 더 중한 것이다.
299 우리는 성인(聖人)이 될 의무가 있다. 성인 성녀(聖女)가 되지 않으면 빚쟁이다.
300 침묵(沈黙)과 대월(對越)은 우리 육신에 있어서 동맥과 정맥과 같다.
301 망부활축일에 우리는 빛의 예절과 빛의 창조에 관한 창세기를 읽는데 그것은 우리가 새로운 창조세계에 들어간다 함을 뜻하시는 것이다.
302 면형(麵形)은 무(無)다. 아주 미소한 것을 지나서 무에 이른다. 예수님은 내려가고 내려가서 자신을 텅 비우신다. 우리는 침묵으로 사욕이 일어나면 자제하는 것이다. 그러면 빛이 난다.
303 양심은 눈이다. 눈이 있어야 보는 것과 같이 양심으로써 하느님을 뵈옵는다.
304 부활한 육신은 무상손(無傷損), 어렵고 괴로운 것이 없다. 병고, 고단이 없고 항상 건강체다.
305 광명(光明)은 양심불이 찬란해서 빛이 난다. 하느님의 뜻이 바로 그 마음이다.
306 신속(神速)은 빠르다. 착한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들면 빠르게 큰 일도 할 수 있다.
307 투철(透徹)은 다 뚫고 본다. 점성정신(點性精神) 통해서, 과학적으로 볼 때 아톰으로 간다.
308 아톰(Atom)은 눈으로 보는 것이 분자요, 보이지 않는 것은 원소다. 아톰은 원소다. 지극히 미소한 것을 말한다. 사실로 있으나 보이지 않는다. 모든 물체는 아톰에서 시작되고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 육신은 죽으면 없어지지 않고 아톰으로 돌아간다. 물체는 신(神)처럼 되어있다. 아톰은 분해할 수 없을 만큼 작은 것이다. 물이 이루어지는 아톰은 산소 수소가 있으면 물이 흐른다.
309 점성정신(點性精神)은 지극히 작은 데로 내려감을 의미한다. 우리의 고향은 무(無)다. 무로 가야한다. 육신은 아톰으로 가야하고(육신은 물체니까) 영혼은 하느님에게로 가야한다. 영혼은 물체(物體)가 아니다. 영혼의 근본(根本)은 하느님이시다. 아톰이 모이면 내 육신이 된다. 순(純) 아톰과 영혼과 합치는 것이 부활이다. 점성정신을 통해서 장수 무강하게 된다. 아톰적 육신을 가지면 병이 있을 수 없다. 아톰과 영혼이 합쳐서 신인(神人)이 된다. 겸손하고 비천하게 되자. 비천한 데 복(福)이 있다.
310 하느님은 성모님의 비천과 겸손을 보셨다. 성모님 제일 비천하셨고 아들이 십자가상에서 죄인에게 죽으셨다.
311 완덕절정은 면형(麵形)이다.
312 면형(麵形)은 우리 주 예수이다.
313 분심(分心)은 하느님과 나누어진 마음,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마음이니 일치할 수 없다.
314 일치극치(一致極致)는 면형(麵形)이다.
315 첫째 규모는 양심 알아듣게 비추어 주신다. 그러면 양심이 빛이 나고 아주 편해진다.
316 빛이 나는 양심은 하느님을 보게 되고, 자주 생각하고, 하느님을 깨닫게 된다. 양심의 가책 받는 것은 죽어도 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을 깨달으면 곧 고쳐야 한다. 하느님 싫어하시는 것은 즉시 드러난다. 그러면 그만큼 하느님을 알게 된다.
317 양심(良心)의 가책(呵責)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318 둘째 규모는 타인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알아야 한다. 다른 이가 내게 비난하는 것 알게 되는데 그런 비난받지 않게 살아야 한다. 하느님 좋아하시는 것만큼 낙을 누리게 된다. 희생하고 제사 드리면 하느님의 빛이 발하여 우리에게 비치게 되고 복(福)이 온다. 예수 십자가상의 희생과 같이 바친다.
319 영혼에는 지성, 의지가 있다. 지성에는 양심(良心)이 있고, 의지에는 자유(自由)가 있다. 지성 대상은 진리다. 진리 가운데 선(善)이 깃든다.
320 선(善)의 집은 진리(眞理)다. 양심을 명해 선을 가꾸게 하였다. 양심의 직분이다. 양심 꺼리는 일을 하지 말자. 괴로움을 받는다. 안 지키면 지옥같이 된다.
321 자유(自由)는 선택하는 것이다. 덕에서 덕으로 가니 복(福)만 내려온다. 의식주 밖에 모른다. 돈을 벌기 위해 양심을 거스린다. 그들의 목적 전부가 의식주다. 의식주가 완전한 복을 주지 못한다. 상선벌악에 의해 받는다. 자유는 선택이 직분(職分)이다. 좋은 것만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점점 잘 살게 되고 세상에서도 재미있게 산다. 그러나 양심을 잃어버리면 영혼이 없는 것과 같다. 양심을 잘 쓰고 자유를 잘 지키면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돌아간다. 고통이 없다.
322 인간은 광물, 식물, 동물, 영성, 신성(성신모심)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성신(聖神)을 모셔야 한다. 안 모시면 초자연계를 모르는 이요, 하느님을 모르는 이다.
323 성모의 자녀는 성신(聖神)모신 이다. 이 세상을 넘어가 천상생활을 하고 있다. 죽기 전에 천국을 누린다. 많은 사람이 이런 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타볼산에서 보았다. 이는 세상에서 천국생활을 함을 가르치심이다.
324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누가 나를 믿는 이냐 - 내 말을 듣는 이다. 누가 나를 사랑하는 이냐 - 내 말을 듣는 이다. 누가 복된 이냐 - 내 말을 듣는 이다. 말을 듣는 것은 말하는 이의 마음을 닮는 것이다. 즉 말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듣는 것만큼 예수님과 같아진다. 전부 듣는다면 똑같아진다.
325 예수님 마음은 만선(萬善), 만복(萬福)이 충만한 마음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같이 누리게 된다.
326 의지는 덕(德)이 깃드는 곳이요 덕에는 복(福)이 깃든다. 의지는 자유를 통하여 만선, 만복, 만락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다.
327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그분의 영혼(靈魂), 육신(肉身)을 닮아야 한다.
328 하느님의 사람이 되려면 면형(麵形)으로 가야 한다. 우리 주 예수 면형에 계시니까, 면형에 가야 우리 주 예수를 만난다.
329 면형(麵形)에 우리 주 예수 계신다. 우리 주 예수와 면형은 나뉠 수 없다. 밀떡 형상을 하고 계신 것은 기적이다. 부속성(맛, 빛, 냄새)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없어져야 할 것이 남아 있으니 이것이 기적이다. 면형에는 누룩을 넣지 않는다.
330 해방절 칠일 동안에는 누룩 없는 빵을 먹는다. 누룩을 넣은 빵을 먹으면 이스라엘(하느님 백성)에서 제명된다. 모세가 말하기를 누룩을 넣은 빵을 먹는 이는 제적된다 하였다.
331 누룩은 반죽을 부풀게 한다. 이는 사욕이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과 같다. 만나는 누룩이 없는 빵의 예표(例表)다. 만미(萬味)를 갖춘 음식이다.
332 번제는 불에 사루어 바치는 것으로, 끓고 타는 사랑의 불꽃으로 바치라는 뜻이다. 멜키세덱은 빵과 포도주로 제사를 올렸다. 예수님의 제사를 예표(例表)한 것이다. 빵 제사를 드리는 사제들은 멜키세덱의 후예다. 멜키세덱은 시작도 끝도 없는 이다. 그때 나올 뿐이다. 빵 제사는 끝이 없는 제사. 끊임없는 기도를 예수께서 부탁하셨다. 끝이 없는 기도는 사욕 없는 상태의 기도다. 사욕 없는 마음을 바쳐야 한다. 사욕 없는 마음은 하느님 바라고 원하시는 누룩 없는 빵이다. 하늘에서 오신 누룩 없는 빵과 똑같다. 빵 제사를 올림, 이것이 기도이다. 사욕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동안 계속 빵 제사(祭祀)가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333 점성정신(點性精神)은 수도정신의 뿌리다. 점성정신에서 침묵이 나온다. 어떤 수도원이나 침묵 없는 수도원이 없다. 즉 침묵(沈黙)은 사욕을 억제하는 것이다.
334 하느님의 원하심은 죄(罪)짓지 말고 사욕을 억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권(自主權)이 있기 때문에 자주권을 잘 써야 한다. 이것을 잘 쓰면 자주권을 권장시키고 누를 힘을 주신다. 덕에 복이 들면 덕 중 덕인 사랑에는 만선만복(萬善萬福)이 올 것이다. 희생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신다.
335 십자가는 우리가 우리 죄로 말미암아 받아야 할 전부가 아니다. 예수께서 협조해 달라 하신다. 전부는 지고 가시고 우리는 조금만 지게 하셨으니[내 짐은 달고 가볍다 하시고] 달고 단 십자가다. 이 십자가는 죽이는 형틀이 아니고, 침묵하는 영혼이 십자가를 알아들어 잘 지게 되는 것이다.
336 십자가를 어떻게 잘 질까? 모세 앞에 파라오가 꼼짝 못하고 이스라엘이 가는 곳에는 바다가 길을 내고, 양식이 끊어지면 하늘에서 양식이 내려왔다.[모세가 십자가를 질 때 이상과 같이 해주심] 예수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 죄 때문에 그렇게 되신 것이다. 우리가 희생으로 참아 받으면 모세 이상으로 받을 것이다. 해치지를 못한다.
337 세 아이 다니엘 등은 불에서 사자가 꼼짝 못한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 예수님 도와 달라고 하시는 십자가는 사랑으로 주신 것이니, 꼭 지고 가야 한다. 이는 달고 단 신락(神樂), 힘, 권능(權能)으로 돌아간다. 이 십자가를 참아 받으면 희생이 된다. 이 희생이 올라가면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이 영광을 우리는 누리게 된다.
338 관상(觀想)생활은 하느님을 알아보는 생활이다.
339 부활한 육신은 육신이 아니다. 육신이 만들어지는 원소로 이루어진 것이 부활한 육신이다. 사람은 영혼, 육신이 합쳐진 것이다. 아톰은 물체를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너무 작은 것이다. 점성정신은 아톰(Atom)으로 가는 길이다. 점(點)도 아톰처럼 보이지 않는다.
340 점(點)은 길이, 높이, 넓이도 없는 정신적 존재다.
341 예수와 일치 된 자는 사제다. 빈틈없이 제사(祭祀)가 올라간다. 우리 주 예수와 떠날 수 없는 인연을 맺는다. 이것이 사제(司祭)다.
342 육신은 아톰으로 영혼은 무(면형)로 가야 예수님을 만난다. 예수와 하나인 자 바랄 것이 없다.
343 일반적으로 본 점성정신(點性精神), 세상이 다 알아주는 말이다. 점성정신 시간엄수, 규모있고, 알뜰하고, 교육을 철저히 받은 자를 이름이다. 겸손함이다. 예수님도 내려 가셨고, 봉사 하셨다. 병도 고쳐주셨고 죽은 이들도 살려 주셨다. 마침내 극악 대죄인으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내려가셨다. 그분은 무가 좋아 면형으로 가셨다.
344 “빛나는 빛이다.” 빛을 받으려면 어두운 것이 물러가야 한다. 성의노력(誠意努力)을 하여야 이를 하느님께서 보시고 우리에게 빛을 보내신다. 그래야 하느님 맛을 알고 하느님에게로 마음 기울어지게 된다. 점성정신(點性精神)으로 살고 죄를 뉘우치고 다시 안 짓기로 결심하고 사욕까지 안 짓기로 노력하면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 그분이 하려면 안 되는 것이 없다. 하느님 일러주시는 대로 잘하니, 빛이 와서 찬란해지고 관상으로 들어간다. 관상(觀想)으로 선을 익히고 익힌 선은 덕이 되고, 덕에는 복이 온다. 점성정신으로 하느님과 일치극치가 된다.
345 신덕(信德)으로 본 점성정신(點性精神) 예수님은 큰 것을 우리에게 시키러 오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느님 마음에 들게 사는 것이 필연 조건이다. 사람은 동물성과 영혼으로 되어 있다. 동물성 - 의식주, 영성 - 지성, 이성에는 양심, 의지에는 마음, 마음에는 자유라는 일꾼이 있다. 자유에는 선택 고르는 능력이다. 골라잡으니까 선에서 꽃이 핀다. 꽃은 덕이다. 사랑이라는 열매에서 복이 나온다. 의지의 대상 - 사랑. 예수님 말씀하시되, “누가 나를 사랑하는 이냐? 내 말을 듣는 이다.” 의지가 무엇을 바라고 원하나? 말은 자기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언사는 마음의 표현이다. 예수의 말씀을 다 듣는다면 내 마음은 온전히 예수와 같아진다. 예수께는 선, 덕, 사랑이 있다.
346 성모님은 죄 없으신 분으로, 사욕이 있을 수 없고 찬란한 양심불, 열두 별이 성모님을 쌌더라[묵시록]. 이분을 어머니로 모시게 하심은 우리도 그분처럼 원죄 없는 상태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죄짓기 전 상태를 복구할 수 있음을 성모님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다.
347 성인(聖人)의 죽음은 복된 죽음, 죄가 없으니까 점성정신으로 살면서 죄 보속을 다했다.
348 미소한 것은 힘이 안 든다. 미소한 일 하는 데에 완덕(完德)이 생긴다.
349 하느님 원하시는 것은 한 가지가 있는데, 하느님 명하신 십계(十戒)만을 지키라고 하시지 않으신다[외교인도 지키는 이 있다]. 그 한 가지는 복음적 훈시(訓示)다[수도자에게 명하신 것].
350 복음적 훈시는 원죄 없이 나신 성모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께서 “나 진실히 진실히 이르노니 그대로 실천하면 복된 자 되리니,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다”(요한 14,12)하셨다. 내 자유는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상태를 그대로 복구하는 길이다. 정결, 순명을 맹세하였고, 재산 가질 수 없다. 공동 재산이다. 순명지덕으로 큰 계명만 지킬 것이 아니라 무엇이나 하느님 원하시는 것 해 드리겠다고 했다.
351 모든 것을 다 끊어버리고 주를 따라가는 이는 영생과 현세에서도 복된 생활을 약속해 주셨다. 해 주셨으면 좋겠다하는 것을 사랑으로 해 주어야 한다. 이 생활은 죽지 않는 길이다.
352 왜 면형(麵形)에 계실까? 예수 하시는 일은 알파와 오메가라 하셨으니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예수께 배워야 하고 이렇게 하시려고 오셨다. 일거일동이 우리 본보기다. 예수 보다 더 큰 일 한다고 하셨는데, 더 큰 일은 자주권을 주신 것이다. 독립을 시켜주셨다. 자원해서 해야지 하느님 억지로 안 하신다. 자주권은 하느님께서 존경하신다. 당신과 같이 위격을 주사 자연계에서 으뜸이 되게 하셨다. 으뜸은 자주권(自主權)이다.
353 우리가 어디를 가나 저 사람은 봉사할 사람이다. 우리를 도울 사람이라고 인정받아야 한다. 서로가 도움이 되도록 일을 해야 한다. 봉사적이라야 한다. 하느님과 사람에게 봉사함으로써 면형이 된다.
354 누구든지 면형으로 가는 정도대로 면형에 가까울수록 육체까지 달라진다(아톰적 육체를 누리게 된다). 아톰으로 이루어진 육체는 순결하고 편안하고 장수한다. 죽음이라는 변화만 이루어질 뿐, 마치 신화(神化)한 육체로서 신(神) 자체인 영혼과 합하여 천국으로 간다. 아직 죽음을 지나기 전에 이 사람은 세상에서 천국을 누린다. 그는 죽음이라는 변화만 남아있다. 그러나 현세(現世)에서 천국을 누린다. 누구나 면형에 도달하면 어려운 게 도무지 없다.
355 하느님께로 가려며는 빛을 받아야 한다. 구름이 끼고 비가 오면 태양을 볼 수 없다. 분심잡념을 물리치고 영혼의 날을 청명하게 해야 한다.
356 자유는 선택하는 힘이요, 뉘우치는 힘이다.
357 침묵은 말 안하는 것이 아니며, 나를 억제하고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358 완덕을 닦는 데 있어서 세 고개를 넘어야만 되는 것이다. 첫 고개는 말할 수 없이 힘들고 괴롭고 아주 험한 고개이다. 이 고개는 절대적으로 넘어서야만 할 고개이다. 이 첫 고개는 죄를 없애고 양심불을 밝히는 고개로서 정화의 고개이다.
359 완덕을 닦는 둘째 고개는 수련과 단련의 고개를 넘어선 빛이 오는 조명기로서 분심잡념을 물리치고 사욕을 누르고 넘는 고개이다. 이 고개는 첫 고개를 넘어선 위로로써 주님께서 때때로 잡아 끌어 주신다.
360 완덕을 닦는 셋째 고개는 일치기로서 면형무아에로 가는 고개이다. 이 고개는 내 힘으로 넘는 것이 아니고 천주님의 사랑인 십자가의 신비와 그 맛에 나도 모르게 슬슬 넘어가게 되는 고개이다.
361 나와 이웃과의 관계는 순수한 형제애의 관계만 유지할 것이며, 사물과의 관계는 항상 풍부한 상태를 피하고 부족한 관계를 맺을 것이다.
362 완덕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좋은 것, 편한 것, 유행적인 것을 많이 소유함으로써 사욕이나마 흡족 시키려 하는데 천상적 위로가 없기 때문에 자연 세속에 기울어지게 된다.
363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간단없는 기구란 반드시 무릎을 꿇고 드리는 기구를 의미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이 기구화 할 때 갖는 몸과 마음의 자세로써 이루어져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364 우리의 기도 목적은 자신에게는 완덕을 실현하는 데 있고 세상에 대해서는 하느님을 보여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양심불이 밝으면 마음이 안정되어서 끊임없는 기구를 할 수 있다. 즉 수도자의 생명은 양심에 달려있다.
365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유를 주시어 얼마든지 성화할 가능성을 주셨고 양심을 주시어 자기 안전을 보존하도록 마련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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